<리포에틱_ON-THE-SCENE> 

 


LEE : ‘Perigee Artist #28 장재록 [The Square] 작가와의 대화’에서 한국화란 용어를 썼다. 동양화와 한국화란 용어가 혼용되는 상황에서 한국화란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동양화(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들마다 자신의 관점과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단어를 선택해 사용한다.

 

JJR : 내가 대학교에 들어갔을 당시에도 한국화냐, 동양화냐에 대한 이슈는 있었지만 대부분 동양화란 단어를 사용했다. 학과(전공)명도 동양화과였다. 내가 한국화란 용어를 선택한 이유에는 대학원 교수님들과 선배들의 영향이 있다. 이분들께서 한국화의 장체성을 정립하기 위해 전시를 하고, 글도 쓰시고 책도 내셨다. 그때부터 두 단어가 혼재되면서 많이 쓰이게 되는걸 느꼈다. 그리고 여러 이유가 있지만, 중국의 국화, 일본의 일본화가 있으면, 우리도 한국화라 불러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던 것이라 이해했다. 물론 학업은 다른 전공을 했지만, 한국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한국의 전통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작업하면 한국화인가 아닌가 하는 식의 질문(반론)도 있다.

과거 중국의 중앙미술학원에 가서 보니 중국에는 우리가 회화를 떠올리는 작업들을 배우는 유화과가 있고 국화(전통화)과가 분리되어 있었다. 근래 한국은 동양화나 한국화과에 입학하면 전통 수업과 현대 수업을 같이 받다 보니 분리하기도, 하나로 합치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재미있는 작품이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유학을 다녀와서 그림을 그리는데 본인을 한국화 작가라고 하는 작가도 간혹 만난다. 또 한국, 중국, 일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완벽한 독자성을 따지기도 어렵다. 동양화를 전공한 사람들의 이슈이자 난제이다. 결국 생각의 관점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개인이 어디에 중심을 두고 발전시키는지 존중하면서 바라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여하튼 나는 한국의 정체성을 찾으려면 한국화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래서 한국화란 단어를 더 많이 쓰게 된다. 전통을 엄격하게 계승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작업하는 분들도 있겠으나 나는 한국화의 길 자체를 넓혀 보자는 입장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근간 자체가 한국화이기 때문에 한지와 먹을 주로 쓰지만, 먹과 피그먼트(안료), 미디움 등을 섞어서 쓰기도 한다. 소재에서도 한국화에서 생소한 국내외 도시풍경과 자동차등이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나의 작업을 한국화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지 않다.

 

LEE : 초기 작업부터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인사아트센터의 전시 [ANOTHER LANDSCAPE 20070905](2007)와 관련해 작가가 적은 글을 보면, “자동차가 북적거리는 거리와 빈 공간을 멋있게 장식하고 있는 건물들 그 안에서 태양을 대신하는 조명까지 사소하게 생각했던 주변의 모든 것이 내게는 푸른 나무와 같은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시끄럽지만 흥겨운 소음 속에서, 현란하지만 풍부한 색채 속에서, 복잡하지만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도 우리는 기쁨과 만족 그리고 휴식을 느낄 수 있다. (중략)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달콤한 여유를 맛볼 수 있기를 또한 나의 소박한 시도가 당신의 삶에 활력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라고 적고 있다.

어떤 점에서 삶에 활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인지 조금 더 설명을 듣고 싶다. 이후의 평론에서 반복적으로 거론되듯이 장재록의 작품은 현대인의 욕망과 자본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도시와 자동차의 이미지를 담는다. 물론 인간의 욕망은 삶을 위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욕망이 없으면 인간의 삶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품을 후기 자본주의 시대, 스펙터클에 함몰된 현대인을 한 번 더 스펙터클로 인도하는 그림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자동차는 소비와 소유의 기쁨을 배가시키고, 기능성이 아닌 이미지/기호로 소비되는 상품이다. 이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자동차를 비합리적이고 병적인 소비 형태를 작동시키는 대표적 상품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JJR : 당시 개인전을 위한 작품을 다 완성한 뒤 길에서 봤던 람보르기니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그려봤다. 당시에는 람보르기니가 한국에 몇 대 없었을 때라 새롭기도 하고 매력적이었다. 밤새 그렸는데, 다음날 작업실에 방문한 지인이 그 그림을 보고 작품이 나 같다고 하는 거다. 작품에 내가 투영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이 자동차를 그리게 된 계기였다. 자동차 작업을 진행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식으로 그려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그림에 다가섰을 때만큼은 사족을 다 떼고 순수한 나(인간)의 욕망에 접근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자동차 이면에는 나 개인의 욕망이 담겼다. 산업사회의 구조와 의미도 담겨 있지만 그것은 다음 단계의 이야기이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생각할 게 정말 많다. 직업, 인간관계,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한 책임 등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있고 지켜야 할 것도 많다. 현대인의 소비에 관한 부정적인 의미로 자동차가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 자체가 활력이 되고 휴식이 될 수도 있다. 자동차를 사고 싶고, 그것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욕망에 사회적인 시선을 덧붙이니 복잡해지는 거다. 나는 모든 사회적 의미를 다 내려놓고 순수하게 보고 그렸다. 남성이 좋아하는 것의 상징은 자동차, 여성이 좋아하는 것의 상징은 다이아몬드였다. 물론 지나친 일반화로 보일 수도 있는데 단순하고 간단하게 접근하고 싶었다. 또한 나는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 아파트 혹은 서구식 주택, 시멘트 건물에서 나고 자랐다. 아스팔트 도로를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시대에 태어났으니 이게 익숙하다. 우리에겐 정선의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1751)와 같은 정말 아름답고 훌륭한 전통화가 많다. 나는 그분들과 다른 시대에 살고 있으니 그런 풍경을 그렇게 잘 그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설퍼도 나만의 그림을 그리자고 해서 우리 시대의 표상인 자동차를 그린 것이다.

당시 반응이 좋았지만, 주변의 동양화 선생님들께 많이 혼나기도 했다. 이것이 동양화가 맞냐고 질문도 많이 하셨다. 자동차 전단지 같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작업이 딱히 동양화가 아니라고 단정할 이유도 없다. 또 모두가 똑같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하면, 똑같은 작품만 하면 발전도 없고 재미도 없다. 서로 다르게 생각하니 다양한 작품이 나오는 거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나의 기호와 지식으로만 접근했다. 그래서인지 당시에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다.

 

LEE : 먹으로 그리니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나 자동차라는 소재와 충돌하는 것 같으면서도 각자의 매력을 부각시킨다. 수묵으로 금속성의 사물을 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도전이었을 것이다. 진한 먹에서부터 연한 먹으로 진행했다거나, 여러 번 칠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반드시 전통화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 채색화에 가까운 방식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수묵화라고 하기도 어렵다.

개인적으로 한지가 아닌 천에 그린 것도 탁월한, 동시에 필연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붓이 여러 번 닿게 되면 종이가 일어나기도 하고, 한지 그 자체의 질감이 금속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각각의 재료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작업 과정에서 극복해야만 했던 어려움 등이 있었다면? 먹이 천에 매끈하게 잘 스며들지 않을 것 같은데 혹시 아교포수 등의 전(前)과정이 있었는가?

 

JJR : 먹을 더 진하고 세련되게 쓰면서 현재적인 느낌을 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표현 방법들을 찾았다. 전통 채색화는 보통 두꺼운 장지에 그림을 그리는데 물감이 종이에 스며들기 때문에 물감이 종이 위에 얹어지는 게 아니라 아래(뒤)로 빠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아교라는 접착제를 이용해 아교반수를 하고 종이의 뒷면을 막은 뒤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일정 횟수 이상 반복적으로 채색하면 물감이 스며들고 쌓이기를 반복해 색이 진해진다. 반대로 아크릴은 물감이 종이에 스며들기 전에 코팅을 하기 때문에 물감이 바로바로 쌓이는 게 보인다. 고민을 하다가 먹이 조금 더 진해 보일 수 있도록 배접을 이용했다. 보통은 그림을 완성한 뒤 배접을 하는데 나는 면에 한지 배접을 한 뒤 먹을 칠했다. 그러면 종이가 천의 뒷면을 막아주기 때문에 먹이 쌓이게 된다. 먹은 아교를 섞지 않고 물로만 조절해 사용했다. 작업의 특성상 한번 그리기 시작하면 한 면을 끝까지 완성한 뒤 붓을 내려놔야 한다. 안 그러면 지저분하게 자국이 남는다. 또 작엄실 온습도도 철저히 계산해 지켜야 한다. 상당히 예민하게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먹이나 면의 종류뿐 아니라 진하기에 따라 물을 몇 퍼센트 섞어야 하는지와 같은 조건을 다 찾아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조건이 다 맞춰서 작업했다.

대학생 때 서양화를 전공한 친구들이 나에게 재료적인 특성 때문에 동양화로는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에 한계가 있지 않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사실적인 묘사에 대해 연구를 한 것도 있다. 내 그림을 보면 정말 사실적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고 차들이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먹의 번짐일 뿐이다. 먹은 반짝거리지 않고 흡수한다. 무광인데 반짝거림이 느껴져 그 안에서 재미를 느끼는 거다.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붓질의 기술도 연구하게 되고 상황에 맞는 붓도 선별하게 되었다.

 

LEE :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수묵화 방식으로 그리진 않았을 것 같다.

 

JJR : 채색화 같은 경우는 종이가 있고 아교포수를 한 뒤 한 번 그린 뒤 말리고 다시 한 번 그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분채 가루가 아교와 함께 쌓이고 올라간다. 처음에는 한지의 질감이 보이다가 나중에는 마치 유리판처럼 매끈한 느낌이 올라온다. 그러나 내 작업의 경우엔 마르기 전에 한 면을 다 칠해야 한다. 안 그러면 물감과 물감 사이에 아교 흔적이나 얼룩이 남는다. 멈춘 부분의 흔적이 그대로 남는 거다. 그래서 한 형상을 그리기 시작하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끝까지 다 그리고 손을 떼야 한다. 동양화는 수정하기가 어렵고 특히 내 작업이 더 그렇다. 그것이 매력이기도 하지만 작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힘든 것도 있다.

 

LEE : 자동차의 라이트와 샹들리에의 빛, 눈밭의 자동차는 흑백의 대비 효과를 살리면서 검정색/먹 그 자체를 돋보이게 한다. 설경을 그린 수묵화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JJR : 일부러 설경을 만들려 한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전통적인 작업들을 많이 보기도 하고 그리기도 했었으니 자연스럽게 바탕에 깔려 있었을 수는 있지만, 설경을 그린 전통화를 의식해 눈이 온 풍경을 그린 것은 아니다. 눈밭에 있는 차를 그리면 더 반짝거리게 보인다. 그게 재미있었다. 그리고 눈이 온 도시에 자동차가 서 있는 풍경은 내가 겨울철 평상시에 자주 보던 것이니 자연스럽게 그리게 되었다.

 

LEE : 작품의 보존은 어떤가?

 

JJR : 한지가 1000년 이상 간다고 하지만 그건 온도와 습도가 모두 맞아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쉽지 않다. 예전에는 지구온난화도 없었고 사계절이 있어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온도차와 습도차가 심해 버티기 힘들다. 곰팡이도 잘 생길 수 있고, 화판이 휘어질 정도로 수축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보존수복 수업을 듣기도 하면서 해결책을 강구하다 안료도 환경 변화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야겠다고 결론짓고 ‘재록블랙’을 만들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 누군가가 나의 작품을 복원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재료에 관한 부분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기록해두고 있다.

 

LEE : <Another Landscape>에서 외국 자동차만 그린 것 같다. 실제로 ‘자동차의 멋진 부분을 찾다 보니 외제차를 그리게 되었다’고 인터뷰했는데, 멋진 부분이란 것이 정확히 어느 부분인지 궁금하다.

 

JJR : 많이 그린 것은 사실이지만 외제 차만 그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작품들을 보면 국산 차와 외제 차가 섞여 있다. 외국 풍경만 그린 것도 아니다. 강남역이나 코엑스, 광화문등 한국풍경도 등장한다. 다만 내 작품 중 많이 알려진 것이 외제 차를 그린 것이고, 감상자도 생소한 이미지를 더 기억하게 된다. 내가 독특하고 낯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제 차나 풍경을 그리게 되었다.

 

LEE : 전작에서도 자동차에 살짝씩 반사되던 도시의 풍경이 보이긴 했지만, 2009년 이후 도시의 정경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장재록의 도시 풍경을 보다가 애니메이션 <르네상스 Renaissance>(2006)가 생각났다. 흑백이어서인지 미래적이고 SF적인 인상도 있다. 도시 풍경은 어떻게 선정하는지, 어떻게 재조합하는지 궁금하다. 실제 자동차/도시를 본 뒤 촬영하고 작업했는가? 온라인에서 얻은 이미지를 활용하지는 않는가? [The Square](2022)에서 선보인 작업을 위해서는 온라인에서 사진(이미지)을 찾았다. 게임의 배경은 언제부터 등장했나? 혹시 어떤 게임인지 알려줄 수 있는가?

 

JJR : 내가 현장에서 직접 보고 찍은 풍경이 90% 이상이다. 국내든 해외든 카메라를 들고 무조건 나가서 돌아다니다 발견하는 풍경을 찍는다. 자동차를 그릴 땐 1년에 반 이상 외국에 있었다. 정말 많이 사진을 찍고 그곳 분위기와 느낌을 적은 후 작업실에서 고른다. 될 수 있으면 사진 한 컷에 들어온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다. 그 밖에 직접 보지 못하는 희귀한 차들은 웹사이트에서 이미지를 수집한 뒤 변형한다.

게임 풍경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관심이 시작되었다. 게임 속 풍경의 경우 레드 데드 리뎀션 2(Red Dead Redemption 2),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 World Rally Championship) 9, 더 크루 2(The Crew 2)에서 가장 많이 수집하였다. 레드 데드 리뎀션은 미국의 서부가 배경이고, 월드 랠리 챔피언십은 정글 랠리(Jungle Rally), 더 크루는 자신이 원하는 차, 오토바이, 보트, 비행기를 이용해 미국을 축소해 놓은듯한 가상세계를 돌아다니는 게임이다. 이전에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실제 현장에 갔다면 이제는 게임 속에서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차를 몰거나 말을 타면서 이미지를 얻는다. 레드 데드 리뎀션 2은 서부극이다. 사람들이랑 싸우고 미션을 하는데 미션을 안 해도 문제가 없다. 그냥 말 타고 돌아다닐 수 있다. 나와 싸워야 하는 등장인물들이 있는 곳을 벗어나면 정말 야생이다. 게임을 해서 점수를 따려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사람들 없는 곳으로 혼자서 돌아다니다 이색적인 풍경을 접하면 캡쳐한다.

 

LEE : 작업을 위해 게임을 하면 일로 하는 것인데 재미없지는 않나?

 

JJR :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게임 자체가 재미있다. 과거에는 게임 참여자가 갈 수 있는 길이 정해져 있었다.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풍경이 있고 돌아다닐 수 있는 범위가 좁았다. 그러나 요즘 게임은 오픈 월드라고 해서 현실과 거의 같은 세상이 있고 그곳에서 어디든 갈 수 있다. 말 그대로 가상현실이다. 현실에 기반한 풍경이기 때문에 게임 밖의 물리적 세계와 매우 닮았다. 기술의 발전으로 현실감이 매우 높아졌다. 더 크루 2의 경우 미국의 환경을 축소해놓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전시 [The Square]의 작품들은 현실과 가상이란 주제로 픽셀을 소재로 하게 되었다.

 

LEE : 작업이 상당히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다. 즉흥적인 부분이 거의 없는 것 같다.

 

JJR :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그 안에서 규칙이 확립되어야 작업이 시작된다. 심지어 내 감정 상태도 어느 정도 조절한 상태에서 작업한다. 작업실의 물리적 환경과 재료에서부터 마음 상태까지 모든 상황이 만족 되어야 붓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작업할 때 준비가 오래 걸린다. 예민해지기도 하고.

 

LEE : 2007년도에는 번호판에, 2008년도 작품은 화면의 상단이나 하단에 가로로 길게 제목과 작업 시기, 작가 이름을 넣었다. 그리고 빨강, 분홍 같은 색채가 등장한다. 색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후 <Another Place-Forest>, <Another Act>에서도 색이 등장한다. 특히 <Another Act>에서는 색면이 등장한다. 관련해 ‘현실과 가상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설명을 보았다. 각각의 작업에서 색채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JJR: 초기에는 자동차 번호판에만 아크릴 물감을 썼고 나머지 검정색은 모두 먹이다. 당시 작품 제목이 ‘Another Landscape+날짜’였는데, 그것을 마치 전통 동양화에서 화제(畵題)나 제발(題跋)을 적는 것처럼 적어보려 했다. 자동차를 주로 그리니 그 일부인 번호판에 적는 현대적인 제발인 거다. 전통 채색화 물감으로 할 수도 있었겠으나 내가 원하는 색과 농도 정도를 보여주려면 매우 여러 번 두껍게 올려야 하는데 그러면 내구성/보존 측면에서 힘들 수 있다.

 

LEE : 2007년의 작품에서는 먹과 아크릴을 함께 사용했고 2009년부터 거의 먹만 사용했다. 그러다 2019에 다시 아크릴이 등장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 인터뷰에서 먹이 좋다고 말했었다. 시간이 흘러 매체에 관한 생각이 바뀐 것인가? 또 동양의 먹과 서양의 검정 안료를 섞어 ‘재록블랙’(서울경제 조상인기자의 인터뷰 참고 -

https://www.sedaily.com/NewsView/1VHY9S0P2A)을 만들었다. 어떤 효과가 있는가? 붓의 움직임이 더 잘 드러난다고 했는데 그 차이가 궁금하다.

 

JJR : 근래는 먹에 아크릴 등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아크릴도 수용성이라 효과적이다. 나는 먹장에게 내가 원하는 먹을 요청해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먹에는 소나무의 그을음을 모아 만든 송연먹과 피마자유나 콩기름의 그을음으로 만든 유연먹이 있다. 송연먹은 조선시대에 많이 쓰기도 했고 운치가 있지만 좀 흐리다. 또 소나무가 과거만큼 많지 않아 요즘에 판매되는 먹의 대부분은 유연먹이다. 기름에서 얻기 때문에 유연먹은 진하다.

먹과 아크릴 등을 섞은 이유는 궁극의 진한 검정의 효과를 내고 싶어서이다. 먹만으로는 내가 원하는 최고치의 검정색을 낼 수 없다. 조금 더 극적인 검정을 보여줘야 흰색 여백도 더 반짝여 보인다. 그래서 먹, 아크릴, 미디엄, 피그먼트, 물을 배합해 검정색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램수를 정확히 계산해 만들었다. ‘재록블랙’은 눈으로 보기에도 일반적인 먹과 다른 질감이다. 예상컨대 수명도 더 오래 갈 것이다. 이전에는 그림을 그릴 때 붓자국이 남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붓자국을 내서 물성과 획을 보여주고 싶어서 마티에르 효과를 주고 있다. 최근작들은 가까이에서 보면 붓의 흔적이 보인다. 이 역시 내가 직접 의도해 만든 안료이기 때문에 흔적이 남을 수 있는 거다.


LEE : 그림 속 격자무늬를 보면서 이것을 모두 직접 그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옛날에 조선시대 화원들이 국가에서 출간되는 책의 선을 그었다는 글을 읽었던 생각이 난다. 만약 직접 한다면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게 마음에 안 드나? 아니면 이것도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JJR : 격자도 내가 직접 그린다. 캔버스를 눕혀서 그려야 하기 때문에 팔이 끊어질 것 같다(웃음). 내 몸이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아 최근에는 격자 이외에는 화판을 세워서 그리고 있다. 먹은 세워서 그리면 아래로 흐르는데 재료 개발을 하고 나니 세워서 그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모든 작가가 그렇겠지만 보이는 것보다 조금 더 노고가 있다.

 

LEE : 인터뷰 전에 기대한 것보다 한국화(동양화) 작가라는 정체성이 강한 것 같다.

 

JJR : 한국화의 태도를 지키려고 정말 노력한다. 소재는 현대적이지만 내재한 것들, 생각과 태도는 전통에 맞닿아 있다.

 

LEE : 작업에 관한 일부 기사에서 여백에 대한 언급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Another Landscape>에서 여백을 염두에 두었다면 설명을 부탁한다. 개인적으로 자동차와 도시 풍경을 그린 작품이 여백을 다룬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여백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인 산수화에서 여백은 자연 공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수 없는 정신을 담아내는 공간이다.


JJR : 조선시대의 회화들을 보면 문인화는 배경을 여백으로 거의 비워두고, 산수화는 겹치는곳 이라던지 구름, 안개, 눈 등의 공간을 크게 비워둔다. 나의 여백은 접근법과 크기 모두 다르다. 내 작품의 여백은 반짝거리는 빛을 표현한 것 같은 남겨진 흰 부분이다. 동양화는 빛의 표현을 많이 하지 않는다. 빛을 받거나 튀어나온 부분은 오히려 더 진하게 표현한다. 나는 빛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사진술이 포착한 것처럼 보이는 대로 그린다. 나에게 여백은 극강의 블랙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공간과 같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여백과는 다르다. 작게 남겨진 여백 하나가 큰 작용을 한다. 선인들이 그렸던 그림과 생각을 답습하는 기간도 있었지만 내가 보여주는 작품은 답습이 아닌, 전통이 바탕에 깔려 있으면서 현대적인 변모와 도전과 연구를 하는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LEE : 관련해 2009년의 작업에서 자동차에 나무의 모습이 반사된 것이나 2012년의 작품에 나무가 배경으로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도시의 가로수겠지만 도시와 자연이 만나면서 현실감이 강조되기도 하고 반대로 도시가 더 두드러진다.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자연과 문명이 만났다. 자동차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각적 창작물이다.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마주할만한 대상이다.

 

JJR : 자동차를 그리다 보면 표면에 자연히 자연물이 반사되는 이미지가 등장하게 된다. 그걸 발견하고 환원 혹은 순환을 떠올리며 재미있어했다. 어찌 보면 자동차도 자연에서 온 것, 자원에 인간의 기술을 축적해 만든 것이다. 나중에 자동차의 수명이 다하면 재활용되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거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자연과 문명이 하나로 섞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구조에 자연스러운 나무의 형상이 비치는 것이 기대 이상으로 잘 어울린다. 그래서 반사되는 이미지를 그렸다.

 

LEE : 대부분 정지한 자동차를 그리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고 보니 움직이는 걸 그려도 정지해 보일 수 있겠다.

 

JJR : 움직이는 것을 찍어도 결국은 정지해 보이고 움직임이 잘 보이진 않는다. 때론 움직이는 자동차를 그리기도 했다. 또 정지한 자동차를 그려도 그 옆엔 움직이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포착된다. 시간성이 담기겠지만, 회화이기 때문에 확연히 드러나진 않는다.

 

LEE : 자동차도 하나의 예술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JJR : 내 생각에 인간이 만든 최고의 하이테크놀로지 제품은 자동차이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사물이지 않나 싶다. 자동차를 그릴 때 정말 자동차를 좋아했고 빠져 있었다. 얼마나 좋아하면 그리겠나? 지금은 동시대 미술관에 걸리지만 나중에 500년 1000년 후엔 내 그림이 박물관에 걸리고, 과거의 사람들은 이런 자동차를 탔다는 설명이 붙을 수도 있다.

 

LEE : [가속의 상징 Memento of Momentum](2012)에서 입체 작업이 등장했다. <Heart 1>(2012)의 제작 과정 설명을 부탁한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백년몽원](2011)에 전시한 <심장 Heart>(2011) 이전에도 입체 작업을 제작한 적이 있는가? 회화에 집중하다 설치를 가져온 이유는 무엇인가?

 

JJR: 엔진을 이용한 입체 작업은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전시실_백년몽원 에서 처음 시도했다. 이후 아트사이드에서의 개인전 [가속의 상징]에도 등장했는데 현재까지 총 4점 제작했다. 나는 주로 회화 작업을 하지만 만드는 것을 워낙 좋아한다. [백년몽원]을 준비하며 재미있게 다른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기획자의 의견이 있었다. 여러 작품구상이 있었지만 가장 순수하고 단순하게 자동차 엔진을 선택해 하얀 캔버스처럼 도색했다. 앞서 언급했듯 산업사회 발전에 대한 이성과 욕망의 결정체인 자동차 이미지로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엔진이 등장한 것도 있다. 흰색을 칠한 것은 설치에 대한 관심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하는 시작의 의미였다. 콘크리트에 <심장>을 넣고 발굴하는 영상 작업도 미래가 되면 현재의 우리가 땅에서 유물을 꺼내는 것처럼 엔진을 꺼낼 수도 있겠다는 상상에 근거했다. 작업을 할 당시 앞으로 엔진을 쓰지 않는 시대가 되면 엔진 역시 유물이 되어 발굴되고 전시될 수 있겠다 싶었다.

 

LEE : 장재록의 작품에 등장하는 색면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작가에 의해 각색된 것임을 보여준다. <Another Place-Forest>, <Another Act>에서는 화면의 평면성을 환기한다. 특히 <Another Act>은 색면을 통해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회화의 평면성을 전하는 것과는 모순되게)벽에 걸리는 평면인 회화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공존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회화이면서 공간 설치이다. [The Square]는 특히 회화라는 형식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이 많이 느껴졌다. 관련해 작가의 생각을 듣고 싶다.

 

JJR : 나의 작품 대부분이 회화다 보니 주로 벽에 걸게 되는데 전시를 위해 작품 설치를 마치고 나면 뭔가 공허했다. 전시장 중앙 공간이 작품을 감상을 위한, 유의미한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2012년 갤러리 아트사이드(Gallery Artside)에서의 전시 [가속의 상징] 때 처음으로 벽과 벽이 맞닿는 코너에 작품을 걸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The Square]에서는 작품에 들어온 가상의 공간이 현실의 공간에 놓이는 상황을 만들었다. 마치 실재하는 공간, 입체처럼 보이는 가상 세계의 이미지를 회화로 그려내 그것을 현실 공간에 걸었다. 현실 속 사람들이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 가상과 현실이 겹치고 혼재되는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디지털이 디지털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현실과 디지털이 뒤섞이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한편 작품 뒷면에는 실크로 판넬을 제작했다. RGB(red, green, blue)에 기반한 디지털 세계가 작품에 담겨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실크를 사서 원하는 색으로 염색한 다음 문화재를 복원하는 배접장에게 의뢰해 배접하고 판넬을 제작했다. 보통 회화는 벽에 걸리니 평면이라고 쉽게 받아들이는데, 나는 평면의 얇음을 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누군가는 한지의 그 얇은 것도 두께가 있기에 입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나는 내가 그림을 그린 한지가 이렇게 얇고 그 뒤태는 이렇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평면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크로 제작된 패널이 그림보다 조금 작게 제작되어 그림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실크 패널을 볼 수 없다. 또 한지의 디테일을 옆에서 다 볼 수 있다.

[The Square]를 준비하면서 큐레이터의 기획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페리지갤러리와 약 2년 전부터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고, 신승오 디렉터가 내 작업의 과정을 다 지켜보며 의견을 주었다. 작가와 큐레이터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도 하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하면서 조율해나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작업이 확장되었다. 자신의 개인전이라고 해서 작가가 자기 생각만을 관철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준비 기간도 좋았고, 전시도 만족스러웠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다.

 

LEE : <Another Act>에서 화폭의 왼쪽 위에서부터 오른쪽 아래로 작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nother Act>의 작업 과정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JJR : 현실적인 이유이다. 그림을 훼손하지 않고 그려 나가기 위해서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면 그려놓은 그림에 손이 닿게 된다.

 

LEE : <Another Place>, <Another Act>는 (기하학적인)추상화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격자무늬 이면에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존재한다. 이는 ‘실제를 벗어나는 회화인 동시에 회화를 위한 회화가 되기를 거부하는 태도’가 담긴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회화는 무엇인가? “하나의 실제적 현실과 비물질적인 현실이 중첩되는 지점들 사이에서 이것들을 어떻게 시각화해서 포착할 수 있을까?”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JJR : 내 그림은 무광임에도 반짝임의 느낌을 전달하고, 한국화 같지만 서양화의 소재나 재료를 쓰기도 한다. 즉 극과 극의 대립인 동시에 공존이다. 나아가 나는 현실과 가상(의 풍경) 사이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행위가 공존하는 새로운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게 나의 작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지점에 그리드(grid)가 있다. 참고로 내가 작업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단어는 나의 의미가 담긴 것이다. 예를 들어 무의식이란 단어도 정신분석학적 의미를 담지 않는다.

내 작품 안에 의식과 무의식의 행위가 공존한다고 했을 때 의식의 영역은 기획하고, 소재를 구하고, 중묵으로 형상을 그리는 것이다. 화폭에 그리드가 그려져 있지만 의식의 영역에서 그리드는 작동하지 않는다. 형상이 다 그려진 뒤에는 일정한 알고리즘을 따라 그리드를 채우거나 채우지 않는 행위가 이뤄진다. 이것이 무의식의 영역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그리드가 50% 이상 채워졌으면 그 그리드의 전체를 채우고, 50% 미만으로 채워져 있으면 그대로 둔다는 알고리즘을 적용하기로 마음먹으면 화면 전체에 그 알고리즘을 적용해 완성한다. 이때 나는 기계적으로 마치 0과 1의 반복처럼 행위한다. 어떤 알고리즘을 적용할지는 소재를 찾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스케치하는 중에 결정한다. 알고리즘은 인공물이냐 자연물이냐, 동물이냐 식물이냐 등으로 다양하다. 단 하나의 작품엔 하나의 기준만 적용한다. 이는 형상을 의식적으로 그리려고 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 두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은 리얼리티의 의식을 갖는 중묵의 형상과 무의식의 그리드를 바탕으로 한 픽셀의 이미지가 합쳐진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새로운 리얼리티이지 않을까 싶다.

무의식적 행위를 통해 누가 봐도 ‘이건 자동차고 풍경이다. 뉴욕이다, 베를린이다’와 같은 범주화나 해석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선명하게 형상이 보이니 해석과 질문이 어느 정도 정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폭력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의식과 무의식의 상태가 공존하는 작업이 계속 시도될 거다.

 

LEE : 알고리즘은 즉흥적으로 정하는 것 같다.

 

JJR : 알고리즘은 즉흥성이 크다. 내 작업의 많은 부분이 계획적이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숨통이 트인다고 해야 하나, 틈을 주고 싶었다. <Another Place-Forest>(2019) 시리즈들에 등장하는 색면도 같은 이유를 갖는다. 앞서 그린 형상이 가려져도 좋다는 마음이었다. 알고리즘과 색면의 결정에서 즉흥성이 있어야 답답하지 않을 것 같다. 대학생 때 추상적으로 형상 없이 뿌리고 번지고. 바르기도 하는 작업을 했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LEE : 가상공간이나 NFT에 대한 계획은 없나? 개념적인 면에서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JJR : 작업의 소재에 가상공간과 픽셀이 포함되다 보니 제안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아직까지 나는 잘 모르겠다.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영역 혹은 직접적인 행위를 더 좋아하는 성향이어서 그럴 거다. 지금은 개념이나 시스템의 정리가 잘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술 행위와 상업 행위가 다소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어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언젠가 가상 세계로 갈 것 같긴 한데 많은 준비와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