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속과 생명의 상징>


임대식, 미술비평



적어도 300여 년이 흐른 미래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를 연구하고자 발굴을 한다면. 이라는 가정을 통해 우리의 상상력을 잔뜩 발휘해 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대변하고자 무수히 많은 상징적인 사물들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땅 속에서의 발굴이 아니라 디지털 저장장치라던가 무수히 많은 데이터들이 부유하고 있는 가상공간에서의 발굴 작업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장재록 작가는 동력기관, 흔히 이야기 하는 자동차의 엔진을 그 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자동차 엔진이 현재의 문명 전체를 대표할 수 있다는 작가의 의견에 즉각적인 찬성을 하기엔 조금 무리가 따를 수도 있겠지만 현 시대 기술문명의 발전에 있어 동력기관의 발명 전과 후의 발전 속도를 비교해 보면 충분히 작가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를 부수면서 마치 발굴하듯이 작가는 그 안에 들어 있던 엔진을 찾았다. 콘크리트 덩어리에는 “Heart”라고 새겨져 있다. 작가는 엔진과 심장을 동일시 한다는 얘기다.

수축과 이완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 심장과 피스톤 운동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엔진을 같은 이해선상에 두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생명과 에너지의 상징이고 또 하나는 발전과 가속의 상징이다.


천 위에 먹으로 뉴욕 타임스퀘어의 밤 풍경, 자동차 등 화려한 대상들을 먹 특유의 번짐을 충분히 활용한 모노톤으로 상당히 디테일하게 묘사해 왔던 그 동안의 평면작품들을 떠 올려 봤을 때, 새롭게 시도하는 장재록의 설치작품은 장르적 표현 영역의 확장과 함께 예술적 상상력의 또 다른 지평을 연 듯 하다.


작가의 이러한 표현 영역의 탐구는 영상작업으로까지 이어진다. 발전된 산업사회의 화려한 이면에는 늘 허무와 소외라고 하는 대립의 감정이 항상 공존해 왔다. 노동을 통한 생산의 주체가 경제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생산물로부터 소외되어 왔음은 근. 현대사를 거쳐오며 충분히 주지되어 왔던 부분이다. 여태 작가는 자신의 평면작품을 통해 이러한 대립의 감정을 꾸준히 표현해 왔다. 


그의 영상작업은 이 양면의 감정들을 보다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엔진을 발굴하는 노동행위를 그 어떤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영상작업은 엔진을 찾는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지난한 노동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재생함으로써 과연 우리의 삶을 가속하고 있는 발전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든다.


오히려 작가는 기술문명의 꽃인 자동차와 그것을 가능케 했던 동력장치의 발전을 표현함으로써 삶의 인위적인 가속보다는 자연과 생명에서 느껴지는 무 동력 발전 에너지에 더 관심을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노동을 통해 발굴된 엔진, 즉 자동 동력장치는 인류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결과물이며 그를 통해 인류의 삶에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일종에 인류가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자연으로부터 획득하고 배운 자원과 기술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어떠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래를 위해 개발하고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소비중심의 발전이 아니라 보존과 공존의 논리로 발전하고 개발되어야 하는 것. 작가는 자동차 보닛 위에 비춰진 다양한 풍경을 통해 이를 반추하고 있다. 이는 또한, 인류뿐 아니라 모든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생물들이 지닌 에너지의 공존과 소통을 위한 동력장치로서 생명에너지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의 발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인위적인 동력장치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연료의 소비가 전제되어야 한다. 자연은 말 그대로 스스로 순환하여 에너지를 생산한다. 오히려 거기엔 그 어떤 소비가 전제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과 재생산이 전제된다.


따라서 자연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무 동력 발전기라 할 수 있다. 작가는 결국 인위적인 동력장치를 표현함으로써 자연의 무한한 에너지와 그것의 순환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 온 듯 하다. 물론, 동력장치의 발전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 역시 쉬이 간과할 수 는 없다. 


장재록은 새로운 그의 평면작품을 위해 철골구조를 지닌 교각에 관심을 가져왔다. 말 그대로 이쪽과 저쪽을 잇는 의미를 지닌 교각을 통해 작가는 현재와 미래, 과거와 현재 또는 동양과 서양 등 서로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두 개의 요소들을 연결한다. 타임스퀘어의 밤 풍경이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놓여있는 산업사회의 허무함을 표현해 왔다면 복잡하게 서로 얽혀있는 철 교각은 산업사회에 대한 작가의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보여주고 있다. 교각의 발달은 곧 자동차 산업의 발달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즉, 자동차를 제조하여 소비하려 할 때, 자동차를 위한 도로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그 산업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현대 산업사회를 이끌어 온 동력기관과 그 동력기관을 활용하려는 다양한 부대산업들이 동시에 발전해 왔음에 주목하며  그것을 작가 특유의 감수성으로 표현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엔진과 같은 동력기관이야말로 어쩌면 미래에서 현대를 발굴하거나 시대상을 확인하려 할 때 가장 먼저 찾아야 할 유물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장재록은 이러한 평면작품이 지닌 여러 가지 의미적 해석의 깊이를 위해 기존에 표현해 온 수묵기법을 보다 더 풍부하게 표현하는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흑백의또 다른 화려함과 다양한 색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면 천 위에 수묵으로 작업하는 기존의 재료는 고수하면서 그 색감을 한 층 더 풍부하게 담아냄으로써 흑백이지만 강렬한 색채가 느껴지리만큼 그 디테일에 집중했다. 작가의 주요 테마인 자동차 역시 최신의 모델을 표현해 왔던 기존의 틀에서 클래식한 모델들을 표현함으로 인해 화려한 문명의 꽃으로서 자동차에 집중해 왔던 작가의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경쟁과 소비를 주도하고 있는 날카로운 산업사회와 그 대립적 감정을 최신의 디자인으로 무장된 화려한 자동차에서 찾았다면 클래식한 자동차에서는 보다 인간적이고 정적인 느낌으로 현 사회를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인간미를 느꼈다고 해야 할까. 그 변화된 감수성으로 인해 수묵의 깊이뿐 아니라 작품 전체에 면면히 흐르는 역사적 의식의 따뜻함과 품격이 느껴지는 듯 하다. 해서 이제 그의 작품을 쫓아 삶의 가속을 멈추고 우리 주변에 놓여져 있는 생명의 상징들을 찾아내는 통찰의 동력장치에 시동을 걸어야 될 듯 하다.